많은 구직자들이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는 본인의 비전이나 신념과 무관하게 지원서를 제출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소신껏 지원했지만 넣는 족족 떨어지고 보면 아무 데나 닥치는대로 넣어야지 별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마구잡이로 하나만 걸려라 식의 입사 지원은 삼가해야 한다.
당신의 지원서를 받아보는 사람은 결코 어리고 경험없는 알바생이 아니다. 당신의 지원서를 집어든 사람이 갓 입사해서 직장 경력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인사팀 막내 사원이라고 해도 인사팀은 인사팀, 적어도 이번 공채에 당신과 함께 지원한 수십 명의 이력서는 이미 살펴본 전문가인 것이다. 인사팀 경력 3년 정도의 대리급이라면? 적어도 수백 통 이상의 이력서를 읽어보고 분석해본 전문가인 셈이다.
그런 인사팀 사람들에게 비전도, 소신도 없는 지원서는 딱 두 줄만 읽어도 정체가 드러나는 스팸 메일 같은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안 그래도 넘치는 이력서 읽느라 지겨워 정신줄을 놓을까 말까 하는 사람에게 성의없는 이력서라니,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30초 이상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에 인크루트에서 몇 개, 사람인에서 몇 개, 서류 접수 마감일 하루 이틀 남은 업체들로 서너 개 골라서 Ctrl+C, Ctrl+V, 각 업체에 맞게 깨작깨작 수정하는 식으로 마치 중국 어디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자소서를 대량 생산한다. 많이 쓰다보면 하나쯤은 걸리겠지.. 전혀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것 처럼 당신의 지원서를 일차적으로 걸러낼 인사팀 사람들은 구직자가 어떤 생각으로 자소서를 작성했는지 정말 쉽게 알아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말이다.
서류 통과하는 자소서를 쓰려면 그 회사에 대한 충분한 스터디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일반적인 자소서 항목에서 요구하듯 그 회사에서의 자신의 3년 뒤, 5년 뒤의 모습이 스케치 정도라도 그려져야 한다.(수채화나 정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소서 항목은 그 기업이 어떤 인재를 선호하는지, 어떤 부분을 중시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각각의 항목에 진지하게 답변할 수 없다면 승산없는 싸움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소서를 쓰기 전에 확인하고 스터디 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연혁: 언제 세워져서 어떤 사업을 해왔는지, 중요한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떤 상들을 받아왔는지 ▷ 처음엔 a를 팔던 회사가 b로 확장해보니 b가 더 잘 팔려서 아예 업종을 바꾸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떤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현재 주요 사업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수록 합격 가능성도 높아진다..
- 비젼: 경영진의 사업에 대한 비젼, 방향성은 무엇인지, 임직원에게 요구하는 가치는 어떤 것이 있는지, 선호하는 인재상은 어떤 건지 ▷ 당신의 서류 심사관은 보통 경영진 가까이에 앉아서 경영진의 비젼과 사고방식을 거의 매일 주입받고 있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 관계사: 어떤 기업들과 관계가 있는지(계열사, 자회사 등), 어떤 구조로 그 기업들과 엮여있는지, 어떤 회사의 갑 / 어떤 회사의 을인지 ▷ 이걸 보면 어떤 사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 평판: 임직원들은 자기네 회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언론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상장된 기업이라면 투자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 외부에서의 평판은 사실 구직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내부 임직원들의 평판에 비하면.. 대학교 때 인맥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관심있는 회사에 입사한 선배에게서 내부 평판을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와 취업 관련 카페, 회사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서 위의 내용들을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 그래도 매력적인 회사라고 판단되면 그 때에야 비로소 자소서를 쓸 준비가 된 것이다. 시간 없는데 언제 그런 걸 다 조사하고 있냐고? 그 정도 공을 들이지 않으면 회사에서 뽑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뽑히더라도 문제다. 그렇게 성의없이 사람 뽑는 회사는 뽑은 사람이 언제 나가더라도 타격 받지 않는, 직원 등쳐먹는 회사일 가능성이 99%쯤 될테니까..
자, 이제 제발 시간 없다고 인크루트, 사람인에서 서류 마감 하루 남은 회사들 중에 이름 들어본 곳들로 마구 지원하는 시간 낭비는 하지 말자. 먼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길로 가고 싶은지 개략적으로라도 커리어맵을 짜고(한 번도 안해본 사람이라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게 좋다..) 그 맵 위에서 적어도 한 계단 정도는 도움이 될 만한 회사로 골라서 리스트업부터 하자. 취업 또한 일종의 협상이고 거래다. 회사만 구직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구직자도 회사를 고른다. 주구장창 떨어지면서 내 주제에 무슨 회사를 고르냐고? 다음 포스팅 때 보다 깊게 다루고 싶은 내용이지만 짚신도 짝이 있는 것처럼 분명 내게 맞는 회사가 있다. 어쩌면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회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분명 있다, 내게 맞는 회사.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도 나 뽑아줄 회사 하나 없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 자신감 없는 마음이야말로 취업에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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